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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 쿠로바 아오코 사건

온히

  째깍째깍- 시침소리만이 고요한 집에서 울렸다. 하루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거실의 불만 제대로 켜져 있었다. 카이토는 소파에 앉아서 팔짱을 낀 채 불만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카이토는 발바닥을 탁탁 두드리면서 거실 테이블에 놓여 있는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아무 소식도 없는 애꿎은 핸드폰만 눈으로 괴롭히는 동안 시침은 숫자 12를 향해 달려갔다. 벌떡 일어나서 머리를 헝클이고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핸드폰의 알람이 울려 자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카이토는 겉옷을 집어 들고 집을 뛰쳐나가려 했다. 그 순간 비밀번호 키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애석하게도 그 안도감은 곧바로 들리는 목소리에 깨져버렸다.

  “어라- 왜 안 열리지. 우리 집이 아닌가? 카이토가 이사 가버렸나.”

  술에 취해 잔뜩 꼬인 발음의 말도 안 되는 추론이 들렸다. 카이토는 결국 참지 못하고 현관문을 직접 열었다.

  “카이토!”

 

  환하게 웃는 제 아내의 모습에 잠시 입꼬리가 느슨해졌다. 입꼬리를 단속하기 위해 최대한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다.

  “다. 녀. 왔. 습. 니. 다!♡”

 

  오늘의 주인공 쿠로바 아오코씨의 밝은 인사였다.

 

  취객 쿠로바 아오코 귀가 사건의 시작은 이주 전이었다. 오랜만에 쿠로바 부부 둘 다 쉬는 주말이었다. 부부는 여유로운 휴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아오코는 카이토의 다리 사이에 앉아 뉴스에 열중했다. 넓디넓은 소파에서 한쪽 구석만 이용하는 건 상당히 불편하다. 그렇지만 아오코도 카이토도 딱히 불만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더 붙어 있기 위해 최적의 자세를 고민했다. 다리 사이를 최대한 좁힌 카이토는 뒤에서 제 아내를 안고 휴식을 취했다. 저와 똑같은 향이 나는 아오코는 심신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되었다.

  느긋한 휴식은 아오코의 전화소리 때문에 깨져버렸다. 아오코가 쏜살같이 제품에서 빠져나가자 카이토는 쯧- 혀를 찼다. 귀한 주말에 어느 예의 없는 인간이 전화한단 말인가.

  “아카코! 오랜만이야!”

  카이토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했다. 아카코라면 전화 너머의 제 마음도 꿰뚫어 볼지도 모른다. 두려움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런 제 마음은 모르는지 아오코는 까르르 웃으며 잘도 통화했다. 아오코가 전화를 끊고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당하는 동안 전화가 길어졌다. 서서히 미간이 좁혀져 애꿎은 티비 화면만 노려볼 지경이 되어서야 통화는 끝이 났다.

  뛰어오는 아오코를 기쁘게 반기려 했다. 하지만 아오코는 밝은 미소로 카이토의 기대를 무참히 부숴버렸다. 품에 안기지도 않고 팔을 넓게 벌린 채 아오코는 카이토의 앞에 서서 기대감으로 상기된 얼굴로 외쳤다.

  “아카코가 귀국한대!”

  “아.”

  그 말을 들은 순간 카이토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2주 후에 보기로 했어!”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주는 카이토도 쉬는 주말이었다. 신혼부부답게 제대로 붙어 있고 싶었다. 그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오코는 잔뜩 들뜬 목소리로 다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케이코? 아니 딴 게 아니라-”

  제대로 여자들의 모임을 열 작정인 모양이었다. 카이토는 체념한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오코는 즐겁게 약속을 잡았다. 볼 일이 다 끝나서야 아오코는 카이토의 품으로 돌아왔다. 뒤로 돌아 어딘가 심통이 난 남편을 바라보았다.

 

  “분명 재미있겠지? 그치?”

  마음 같아서는 ‘아니. 난 안 가는데. 간다고 해도 그런 건 거절하고 너랑만 있고 싶어.’라고 말하고 싶었다. 간신히 그 말을 목구멍으로 집어삼켰다. 심술을 부릴까 하다가도 기대감에 부푼 얼굴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이자 아오코가 환하게 웃었다.

  그렇게 쿠로바 아오코는 오랜만에 하는 여자들의 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아오코는 화장과 옷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 모습을 보며 카이토는 하마터면 여자까지 질투하는 속좁은 남자가 될 뻔했다. 결국 스타일링은 언제나 그렇듯이 카이토가 맡았다. 그렇게 아오코는 카이토가 해준 옷과 화장을 한 채 외출했다.

  “다녀올게!”

  카이토는 까치집 머리로 아내를 배웅했다. 문이 닫혀도 계속 손을 흔들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카이토의 손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뒤로 돌아 눈으로 집을 훑었다. 한 사람이 없다고 이렇게 집이 허전하다니. 어렸을 때는 몰랐던 감정이었다. 카이토는 멋쩍게 머리를 긁적였다.

  “집안일이나 좀 할까….”

 

  어느새 뉘엿뉘엿 해가 지는 시간이 되었다. 청소도 식사도 심지어 아직 공연일이 많이 남은 쇼의 준비도 다 해놓았다. 괜히 틀어놓은 티비 소리는 카이토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멍하니 화면만 보던 카이토의 정신을 차리게 한 건 문자메시지 알림이었다. 어느 때보다 재빠른 속도로 핸드폰을 키고 벌떡 일어나 문자를 확인했다.

  ‘저녁도 먹고 올게. 카이토도 맛있게 먹어.’

  카이토는 다시 소파에 힘없이 누워버렸다. 무기력하게 아오코를 기다리다가 10시가 넘어가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연락을 해도 문자나 전화가 돌아오지 않았다. 케이코에게 연락했지만 ‘보채지 마라. 아오코의 남편’이라는 간결한 문자만 돌아올 뿐이었다. 하루가 넘어가면 데리러 가자고 결심했다.

 

  집을 뛰처 나가려던 순간에 쿠로바 아오코씨는 극적으로 돌아왔다. 잔뜩 취한 아오코한테서 술냄새가 풀풀 풍겼다. 아오코는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낑낑거렸다. 보다 못한 카이토는 신발을 벗겨주고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오코를 부축했다. 소파에 앉혀두고 물을 갖다주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둥근 뒷통수가 흔들흔들 좌우로 움직였다.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간신히 앉아 있는 모습에 기가 찼다.

  “몸도 못 가눌 정도로 마시면 어떡하냐, 이 못말리는 아가씨야.”

  잔소리를 해도 아오코는 받아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단단히 취한 모양이었다. 잔을 건네주자 한 번에 다 마셨다. 그와 동시에 카이토는 클렌징 티슈를 손에 들었다. 조심히 살살 닦아주는 손길에 만족스러운지 가만히 있었다.

  “만세.”

  “만세~”

 

  옷을 갈아입히고 그대로 안아올려 침실로 데려갔다. 힘을 빼고 몸을 늘어뜨린 아오코는 평소보다 무거웠다.

 

  “나 무거운데…. 내려줘.”

  “어련하시겠어요. 얌전히 눕기나 하세요.”

 

  잔뜩 빈정거리는 말투에 못마땅한 듯 아오코가 째려보자 카이토는 혀를 내밀었다. 주정뱅이를 내려놓으려던 순간 아오코가 팔에 힘을 줬다. 그 힘에 카이토도 덩달아 침대에 눕혀졌다.

 

  “야.”

  “복수 성공!”

 

  키득키득- 여전히 반성의 기미라고는 보이지 않자 카이토는 결국 기운이 빠진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카이토는 베개를 끌어당겨 아오코의 머리를 받쳐 주었다. 그리고 아오코를 끌어당겨 껴안았다. 하루 종일 부족했던 아오코가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오늘 집에서 뭐했어?”

  “뭐, 집안일도 하고 다음 쇼 준비도 했지.”

  “재미있었어?”

  “...너는 어땠는데?”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오코는 잠시 고민의 시간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재미있긴 했는데….”

  “했는데?”

  “좀 외로웠다고 해야 되나? 카이토가 보고 싶었어.”

  아, 젠장. 카이토가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괴로워하는 카이토를 보면서 아오코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손을 내리자 보이는 아오코의 모습에 카이토는 다시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했다.

 

  “웃기지?”

 

  아오코는 어설프게 웃으며 말했다. 카이토는 그런 아오코를 더 단단히 껴안았다.

 

  “웃기지. 나도 그랬으니까.”

  “진짜?”

  “어, 둘 다 바보같이 굴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게 뭐야.”

  아오코의 곱슬머리가 카이토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그 감각이 그의 품 안에 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사실 오늘 홀로 집을 지키면서 카이토를 괴롭힌 건 외로움이 아니라 불안감이었다.

 

  성인이 되자마자 둘은 바로 혼인신고서에 도장을 찍었다. 카이토는 아오코를 이제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아마 아오코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매지션으로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집을 비워야 할 일이 많아졌다. 자연스레 아오코는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물론 아오코 또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어렸을 때만큼 집을 지키고 있는 시간이 길지는 않았다. 그래도 줄어든 부부의 시간에 잘못을 따지자면 카이토의 지분이 더 컸다. 아오코가 약속에 나가 혼자 집을 지키는 동안 카이토는 어렴풋이 짐작했던 아오코의 외로움을 실감했다. 그와 동시에 불안해져 버렸다.

 

  아오코를 홀로 두고 있다는, 과거부터 이어져 온 미안함과 죄책감, 그리고 언젠가 아오코가 저를 두고 떠나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아오코가 이미 그의 죄를 받아들였다 해도 카이토는 이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죄인만이 알고 있는 벌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카이토는 아오코를 놓아 줄 수 없었다. 여전히 아오코를 외롭게 만들고 그렇기에 카이토는 마음 한 켠에 불안감을 끌어안고 살아갈 것이다. 아오코가 훨훨 날아간다면 발목에 채워진 과거의 족쇄로 인해 따라갈 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조차 카이토에게는 아오코를 놓아준다는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얼마나 성가신 남자인가. 남들은 덤벙대는 아오코를 카이토가 챙긴다고 말하지만 실은 아오코가 없으면 안 되는 이는 카이토였다. 남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없다. 그 사실을 알아야 하는 사람은 아오코였다. 둔하지만 의외로 날카로운 면이 있는 아오코는 이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일 아오코가 알고 있다면 저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교활한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아오코는 새근새근 잠에 빠져 있었다. 옆에 있는 남편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듯이 태평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이 얄미워 보였지만 카이토는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다음 휴일에는 아오코와 달콤한 휴식을 보낼 생각을 하며 카이토도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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