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네가 날아올라도
제비
01.
쿠로바 카이토가 죽었다. 아오코의 졸업식을 코앞에 둔 며칠 전이었다. 고등학생으로 맞는 마지막 겨울, 그 추운 계절에 카이토는 떠났다. 장례식에 온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오코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 위에는 어떤 표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든 사람처럼, 그저 가만히 숨 쉬고 있을 뿐. 사람들이 숨죽여 소곤거렸다.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장례식날에는 비가 왔다. 검은 옷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젖은 우산 끝을 털었다. 빗물이 회색 대리석 바닥에 점점이 짙은 얼룩을 남겼다. 오랫동안 맡은 향냄새가 지독히 머릿속을 헤집는다. 아오코가 조용히 밖으로 나섰다. 비와, 젖은 흙에서 올라오는 냄새가 어지러운 머릿속을 맑게 해 주었다.
아오코에게있어서, 낯설지만은 않은 공간. 어릴 적 흐릿한 기억 위로 선명한 현실이 덧씌워졌다. 이런 거였던가.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 어느덧 빗줄기는 끊어질 듯 가늘어져 있었다. 아오코가 볕 한점 들지 않는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그 시선 끝에서.
하얀 새가 낮게 날고 있었다.
푸른빛 하나 없는 잿빛 하늘에 날아오른 그것은, 마치 작은 달처럼 보였다.
‘반드시, 그곳에서 끌어내려 줄게.’
속삭인 말은, 빗물에 젖어 날지 못할 테지만.
02.
다사다난했던 2학년이 겨우 끝났다. 카이토와 한 반이 된 걸 알았을 때부터 순탄치 않으리란 건 예상했지만, 정말로 떠들썩한 해였지. 아오코가 사물함에 남은 책들을 터지기 일보 직전인 가방에 구겨 넣었다. 뭐, 전부 무사히 끝난 건 아닌가? 한사람, 아오코옆에서 툴툴거리며 가방을 싸고 있는 카이토는 3학년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정학을 당한 것도, 사고를 친 것도 아니었다. 카이토의 유급 사유는, 단순 출석 일수 부족이었으니까. 3학년 진급을 앞두고 자잘구레한 일로 다쳐오던 카이토는 결국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안 그래도 뜨문뜨문 모자랐던 출석 일수였는데, 거기에 입원 기간까지 더해지자….
“집에 가자, 바카이토!
“조용히 해, 멍청이.”
“어? 선배님한테 지금 조용히 하라고 했어?”
으름장에도 조금도 기죽지 않는 아오코의 말투에 카이토가 분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그럴수록 아오코는 즐거울 뿐이었다. 카이토가 가방에 책을 쑤셔 넣다가, 다친 왼팔이 아픈지 오른손으로 팔을 덮었다. 마술사가 된다는 애가, 팔을 다쳐오면 어쩌자는 거야? 아오코가 눈을 찡그렸다. 어쩌다 다쳤냐고 물어봐도 카이토는 대답해주지 않았다. 모르는 게 없었던 제 소꿉친구는 날이갈수록 비밀이 많아져만 간다. 아오코가 카이토의 손을 떼어내고 책을 정리해 넣어주었다.
“카이토, 진짜 아무 일도 없는 거 맞지?”
“그렇다고 했잖아. 정말 시끄럽네.”
아오코가 카이토의 등을 후려쳤다. 으갹, 무방비인 채로 얻어맞은 카이토가 괴상한 소리를 내더니 비틀거렸다. 오른손으로 연신 다친부분을 쓸던 카이토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친 곳보다 네가 때린 데가 더 아파, 바보아오코.”
“입은 아직 멀쩡한가 봐?”
그마저도 아오코의 음산한 한마디에 쏙 들어가 버렸지만. 꼬리를 내린 카이토의 모습에 아오코가 깔깔 웃으며 밖으로 나섰다. 12월답게, 눈으로 덮여 온통 새하얀 풍경이었다. 세상의 모든 색을 뺏기고 하얀색만 남아버린 것처럼. 뭐, 하늘은 여전히 파란색이긴 하지만, 눈이 오면 어차피 땅만 보고 걸어야 하니까. 아오코가 눈을 피해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아저씨는 좀 괜찮으셔?”
“똑같지, 뭐. 아직 우울해 계셔.”
카이토의 말에, 어두운 아우라를 뿜으며 다니는 제 아빠가 떠올랐다. 아오코의 입에서 한숨이 푹푹 새어 나왔다. 아빠를 그렇게 만들 수 있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한 사람뿐이다.
“키드를 못 잡은 게 아직도 분하신가 봐.”
혜성처럼 등장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괴도 키드가 사라진 지 벌써 한 달째였다. 일각에서는 그가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떠들어댔지만, 사실인지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진실도 그와 함께 자취를 감추었으니까. 끝끝내 키드가 찾던 보석이 무엇이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훔쳤던 보석도 돌려줬으니까.
“키드는 대체 뭘 원했던 걸까?”
아오코가 뾰족하게 뼈를 세우고 투덜거렸다. 그 말은 곧 ‘난리란 난리는 다 피워놓고 한마디도 없이 입을 싹 닫는 거야, 그 도둑놈은?’이라는 말이기도 했다. 아오코가 카이토쪽을 힐끔 올려다보았다.
“카이토는 어떻게 생각해?”
“뭘?”
“하아? 안 듣고 있었어? 키드가 찾던 보석 말이야!”
“글쎄….”
아오코의 외침에도 심드렁하니 대꾸하던 카이토의 시선이, 아오코쪽으로 향했다. 카이토의 뒷말은 시선이 떨어짐과 동시에, 한참 후에나 이어졌다.
“못 찾은 게 아니라, 이미 찾은 걸 수도 있잖아?”
“흐응…, 그런가?”
“왜? 키드가 사라져서 서운해?”
“아니, 전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아오코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그래도 전에 너, 키드가 사라지니까 떠들썩한 일이 없으니 심심하다고 했잖아.”
“그거야 당연히 그냥 해본 말이고!”
“참나….”
카이토가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못생기게 찡그려진 눈썹이 그의 기분을 나타내주었다. 투명하게 감정이 드러나는 카이토의 얼굴에, 아오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이젠, 카이토가 퇴원해서 조용한 날도 없을 테니까.”
“….”
“앗, 근데 내일이 방학식이라 상관없겠다.”
펴질려고하던 카이토의 미간이 다시 좁아졌다. 아오코가 혀를 얄밉게 내밀고 앞서 걸어갔다. 정신없이 걷다 보니 벌써 거의 집 앞이었다. 그러고 보니 카이토 집으로 가려면 아까 갈라졌어야 하지 않나? 하기야, 말도 없이 온 게 한두 번이야….
“내년도 있잖아.”
“그래봤자 다른 반인걸! 이제 교과서도 빌리러 못 온다!”
장난기 가득한 아오코의 놀림에도 돌아오는 말이 없었다. 한참이나 카이토의 반응을 기다리던 아오코가 살짝 불안해질 정도로 조용했다. 너무 놀렸나? 하지만, 평소에도 이 정도쯤은 그냥 받아주면서…. 아오코가 뒤늦게 걸음을 늦추며 카이토쪽을 돌아보려던 찰나였다.
“왜 아무말도….”
그러나 아오코의 뒷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무언가가, 제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기 때문에. 손가락 틈새로 따뜻한 것이 파고들어 얽혔다. 빠지지 않으려는 것처럼 강하게. 뒤늦게야, 아오코는 깨달았다. 제 손을 잡은 게 카이토의 손이라는 걸.
물론, 카이토와 손을 잡아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소꿉친구니까, 어렸을 때는 손이야 흔하게 잡았다. 물론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는 그만뒀지만, 지금도 자빠졌을 때는 간혹 잡아 일으켜주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나, 넘어지지도 않았는데.
오랜만에 잡은 카이토의 손은 따뜻했지만, 차갑게 언 아오코의 손에는 불에 덴 듯 뜨겁게 느껴졌다. 당황하는 사이에 아오코는 손을 뺄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아니, 뺄 생각을 하기는 했었던가? 뜨거운 건 오히려 제 손이었던가? 집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카이토가 손을 풀었다. 손끝 너머로 천천히 사라지는 온기가 허전하게 느껴졌다.
“내일 봐.”
이상한 일이다. 하늘은 아직 푸른데, 겨우 올려다본 너는 노을에 적셔진 것처럼 새빨갛기만 했다. 카이토가 황급히 말을 끝맺고는 뒤돌아 자리를 떴다. 서둘러 걷다가 눈에 미끄러져 휘청거리기도 했다. 점점 작은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카이토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아오코가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일 어떻게 봐….”
하지만 그 생각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그날 밤, 잠 못 이루던 그 시간마저도. 다음날 카이토는 등교하지 못했으니까.
***
“퇴원하자마자 입원하는 멍청이는 너밖에 없을걸?”
아오코의 말에, 침대에 누워서 트럼프를 만지작거리던 카이토가 눈을 찡그렸다. 그 옆에서는 아오코를 따라 카이토의 문병을 온 반 친구들이 병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는 하쿠바와 아카코도 있었다.
“그러게 눈이 올 땐 바닥을 보며 걸었어야지. 초등학생도 알겠다!”
아오코의 잔소리에 뒤에 서 있던 아카코와 하쿠바가 피식 웃었다. 그 비웃음을 잡은 카이토가 따가운 시선으로 둘을 쏘아보았다. 그것에 기죽을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진정해, 아오코양. 쿠로바 군도 무슨 사정이 있겠지.”
저, 저저, 저. 능청스럽게 말을 붙이는 아카코의 말에, 카이토가 오만상을 찡그렸다.
“뭣하면 나한테 부탁해도 되는데. 물론 조건은….”
아카코가 말을 끝맺는 대신에 의미심장한 웃음을 머금었다. 등줄기에 이는 소름에 카이토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양하겠습니다아-.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어.”
그것이 카이토의 허세라는 걸 알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그저 평소처럼 웃어 보일 뿐이었다. 카이토는 평소와 다름없는 카이토였으니까. 그렇기에 또 언제나처럼 털고 일어설 거라고.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카이토로 돌아올 거라고.
“카이토, 사과 좀 깎아줘.”
“하? 너, 내가 환자인 건 알고 있냐? 그보다 그거 내 문병선물로 사 온 사과잖아!”
“아닌데? 내가 나 먹으려고 사 온 건데? 난 예쁘게 못 깎잖아!”
어쩌면,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해왔는지도 모른다. 너는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거라고. 상처는 언젠가는 나을 거고, 같은 반은 아니겠지만 등하교도 함께할 거라고. 그때는 내일이 보장되어있었으니까. 너를 만날 내일이. 그러니까 어제 그 일도, 굳이 오늘 물어보지 않아도 될 거라고. 언젠가 물어보면 되겠지, 하고….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 주지 않았다. 카이토가 눈에 띄게 변하기 시작한 것은, 아오코가 다쳐오고 나서부터였다. 그 일이 벌어진 건 여느 때처럼 장을 보고 집으로 향하던 날이었다. 내일쯤 카이토에게 한 번 가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려던 찰나였다. 길가에 주차되어있던 차 문이 열리고 팔을 움켜쥔 손이 아오코를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저항할 틈도 없었다.
제정신이 든 건 차가 출발하는 소리가 난 후였다. 머릿속으로 수십 개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서, 벗어나야 해. 제 머릿속 빨간불이 외쳐대는 소리가, 아오코를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게 했다. 다시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가도 그 최선을 생각해낼 수는 없었을 거다. 그 과정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가 아스팔트에 심하게 쓸렸고, 응급실에 실려 간 아오코는 입원 수속을 밟아야 했다.
사건 자체도 아오코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었지만, 또 다른 충격적인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병원복 위에 패딩만 겨우 걸친 차림으로 쳐들어온 카이토 때문이었다.
“카이토…?”
“너, 괜찮….”
카이토의 말은 채 몰아쉬는 숨에 막혀 이어지지 못했다. 아오코의 팔을 본 카이토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렇게, 하얗게 질린 카이토는 처음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긴장이 풀리며 그제야 눈물이 났다. 하지만 아오코가 한참을 울고 난 후에도 카이토는 제정신을 차리질 못해서, 우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달래주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져야만 했다. 겨우 눈물을 그친 아오코가 콧물을 훌쩍이며 말했다.
“그래도 방학에 입원이라 그나마 다행 아냐? 하마터면 나도 카이토랑 2학년 두 번 할 뻔했잖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아오코의 말에, 카이토도 결국 헛웃음을 지었다. 어찌 됐든 카이토가 웃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안심한 아오코도 마주 웃어 보였다.
카이토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한 것은, 그 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카이토는 아오코와 만나는 것도 극도로 꺼렸다. 코딱지만 한 병원에서 이렇게 안 마주치는 것도 힘들 텐데, 카이토의 머리 한 올도 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것은 둘이 퇴원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참다못한 아오코가 카이토의 집에 찾아가도 집은 늘 텅 비어있었다. 전화도, 문자도, 다 소용없었다. 이렇게 오래 카이토를 만나지 못한 적이 있었나?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함이 조금씩 정신을 갉아먹었다.
카이토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 같았다. 그것이, 너에게 비밀이 많아진 원인이겠지만. 하지만 늘 그러했듯이, 너는 말해주지 않았고, 나는 기다릴 뿐이었다. 그저, 평소의 너로 돌아오기를. 그것마저도 이뤄지지 않을 걸 알았다면, 조금이라도 너를 추궁해볼 걸 그랬나….
카이토를 만난 것은, 개학을 일주일쯤 앞둔 날이었다. 잠깐 나올 수 있냐는 문자에 그렇다고 답하자, 둘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카페 주소가 찍혀 돌아왔다. 그냥 집으로 오면 될 것을. 그날은, 정말로 이상한 날이었다. 그토록 보지 못했던 너를 봤는데도, 네가 아닌 것 같았지. 평소와 다름없는 네가 너무 낯설게만 느껴졌다. 닿을 듯 가까이에 있어도 카이토는 멀게만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난 카이토는, 아오코가 자리도 앉을 새도 없이 본론을 꺼냈다.
“나, 유학 갈 것 같아. 아니, 가기로 했어.”
“뭐? 졸업은 어떡하고?”
“거기서 하겠지.”
날씨 이야기를 하듯, 덤덤히 말을 잇는 카이토였다. 이거 짜고 연기하는 거야? 아오코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처리하느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속고만 살았냐. 진짜라니까.”
“거기 가서 뭐하게!”
“어차피 난 어디를 가도 마술사가 될 텐데, 어디든 상관없지.”
하지만 거기에 나는 없어도 괜찮은 거야? 혀끝까지 올라온 물음은 꾹 다문 입술 너머로 나가지 못했다. 너는 평소의 너처럼, 마치 잠시 여행을 갔다 오는 것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볼거리, 마술쇼, 음식… 그중 절반은 들었고, 절반은 듣지 못했다. 뇌를 물에 빠트린 것처럼 붕 떠서 현실감각이 없었다. 아오코? 아오코? 저를 부르는 카이토의 목소리에 겨우 현실로 돌아왔다.
카이토의 뜻은 단호했다. 놀려도, 설득해도, 비난해도 카이토는 제 뜻을 꺾지 않았다. 너 친구 없잖아! 아오코가 외친 말에 카이토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너 있잖아. 내가 국경 넘는다고 친구가 아니냐? 카이토의 그 말에는, 할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해?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
언제나처럼, 너는 내가 정말로 듣고 싶은 것만 말해주지 않는다. 이젠 내 옆에 있어 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네가 아직, 날 친구라고 말한다면. 계속 그럴 거라고 말한다면…. 아오코가 웃어 보였다. 카이토는 절대 모를, 힘겨운 미소를.
“그래, 외로우면 이 선배한테 편지 써도 된다고?”
켁. 카이토가 음료수를 뱉는 시늉을 했다. 그런 카이토의 발을 시원하게 밟아주고는, 아오코가 의자에 길게 몸을 기댔다. 꺼내기 힘든 말을 꺼내려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아오코가 손톱 끝을 만지작거렸다. 몇 번이고 생각한 말이지만, 입으로 내뱉자니 힘들었다.
“카이토.”
“왜?”
“나, 그때 일 말인데….”
아-. 카이토의 입에서 짧은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아오코의 말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아오코의 말을 끊는 신호였다. 카이토가 휴대폰을 아오코쪽으로 뒤집으며 말했다.
“나 이제 가봐야 해.”
“어? 어, 응….”
겨우 짜낸 용기가 모래처럼 손 틈으로 빠져나갔다. 겉옷을 걸치는 카이토의 움직임에 아오코도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페 앞까지 나온 카이토가 말했다.
“넌 저쪽이지?”
“응.”
“나 없어도 건강해. 촐싹거리면서 다니지 말고.”
“너만큼은 안 촐싹거려.”
“한마디도 안 지냐?”
카이토의 말은 그게 끝이었다. 미련 없이 돌아선 카이토는 뒤도 보지 않고 저 멀리까지 작아져 갔다.
“도착하면 연락해!”
아오코의 외침에 카이토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너무 먼 곳이라 카이토의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늘 그랬듯이, 아마 웃고 있겠지. 아오코는 그렇게 생각했다.
원체 기대도 안 했지만, 카이토에게서 편지가 오는 일은 없었다. 적어도 카이토가 떠나고 반년 동안은 말이다. 하지만, 아마 그대로 평생 오지 않았던 쪽이 좋았을 거다. 카이토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편지에는, 그의 부고 소식이 적혀있었으니까.
***
장례식은 일본에서 치러졌다. 카이토의 어머님이 권하기도 했고, 카이토도 오랫동안 지냈던 곳에 묻히는 걸 원할 거란 말 때문이었다. 카이토를 잘 챙겨줘서 늘 고마웠어, 아오코. 치카게 씨의 말에 아오코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게 카이토의 장례식에서, 아오코가 지은 처음이자 마지막 표정이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이토네 집에 들렸다.
“카이토에게 빌려준 물건이 있어서요. 찾아봐도 될까요?”
“그래, 천천히 보고 나오렴. 난 전화 좀 받고와야겠다.”
시즈카 씨는 당황한 얼굴이었으나, 순순히 아오코를 집에 들여보내 주었다. 사실, 카이토에게 빌려준 물건 같은 건 없다. 카이토방에 들어오기 위한 핑계였을 뿐. 저 멀리서 희미하게 치카케씨가 전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한참은 걸리겠지. 아오코가 천천히 방안을 가로질러 침대 위에 드러누웠다. 아오코에게는, 제집만큼이나 익숙한 곳이었다. 당장이라도 카이토가 저 문을 열고 들어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을 침대에서 밀어내며 똑바로 앉으라고 타박할 것 같은.
이상한 일이지. 정작, 네가 늘 내 곁에 있어 줄 때는 그 순간들이 너무 충만해서 굳이 의미를 찾으려 하지 않았지. 빈자리가 생기고 나서야 그 공백 속에 의미가 새겨졌고, 마지막으로 새겨진 것은, 후회였다. 나는 후회해, 카이토. 뭐라고 꼬집지 못할 만큼 너무 많은 것을. 시선이 닿는 곳마다 네가 떠올라서 괴로웠다. 자신의 아주 오랜 기억까지도, 사소한 것까지도, 모두 카이토가 공유했으니까. 우스운 일이지. 너를 기억할 것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더 괴롭게 느껴진다는 게.
“멍청이.”
아오코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가 떠올랐다. 저 멀리서 아오코를 돌아보던 카이토의 마지막 모습이. 그때,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어? 웃고 있기는 했어? 기억은 점점 김숙한 곳으로 파고들어, 아오코의 깊은 곳을 건드렸다. 더 오래된 기억. 네가 손을 잡아주었던 그때. 네 마음을 확인할 기억이, 고작 그 한 번뿐이라니. 너무해.
“대답이라도 듣고 갈 것이지.”
답도 듣지 않고 도망쳐버린 건 저쪽이다. 그러니까, 다시 만날 때까지 애가 타서 죽어버린다 해도. 그건 다 네 잘못인 거야.
03.
덜그렁.
150엔짜리 캔커피가 요란하게도 떨어졌다. 아, 따뜻한 거로 뽑을걸. 차가운 캔의 냉기가 손으로 넘어오고 나서야 아오코는 뒤늦게 후회했다. 왜 늘 뽑고 나서 후회하는 건지. 그때, 몸을 숙인 자신의 곁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카모리 선배.”
후배인 요시카와였다. 평소라면 무슨 일인가 했겠지만… 입이 근질거려 죽겠다는 저 표정을 보니 듣지 않아도 무슨 말일지 알겠다. 아니나 다를까, 아오코가 묻기도 전에 요시카와가 재빨리 용건을 털어놓았다.
“소식 들었어요. 결국 지원하신 곳에 가게 됐다면서요”
소식 빠르네. 아오코가 후후 웃으면서 후배 몫의 캔커피까지 뽑았다. 차가운 거? 아뇨, 따뜻한 거요. 아오코가 속으로 작게 쳇, 혀를 찼다. 캔커피를 건네받은 요시카와가 애타는 표정으로 아오코를 바라보았다. 아오코가 어련하겠냐는 목소리로 물었다.
“또 다들 시끄럽지?”
“그렇죠, 뭐. 나카모리 반장님에 이어 선배까지도 키드전담으로 가게 됐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얼마나 말하는지 아세요? 아, 물론 전 듣기만 했지만요. 그렇게 말한 요시카와가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귀여운 후배라지만, 이렇게 떠들 때는 정말 정신이 쏙 빠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아오코도 알고 있다. 자신과 아빠를 두고, 사람들이 키드에 목매는 집안이라고 수군거린다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갑자기 돌아온 괴도키드는, 또다시 갑자기 사라졌다가 갑자기 돌아왔다. 하지만, 그의 다음 무대는 일본이 아니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누군가가 왜 세계로 나왔냐고 묻자, 키드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본에는 더 제가 찾는 보석이 없으니까요.’
“선배, 커피!”
요시카와가 다급하게 아오코의 손아귀에서 구겨지고 있는 캔커피를 구해냈다. 하…. 아오코가 손에 쥔 힘을 풀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그 인터뷰를 보고, 제가 얼마나 열불이 났는지…. 아오코의 속마음은 짐작도 못한채, 그녀가 뒷소문에 화났다고 생각했는지 요시카와가 슬쩍 눈치를 보았다.
“어쨌든 축하드려요. 그렇게 노력하셨잖아요.”
“고마워….”
“선배는 유능하니까 갈 수 있는 곳도 많았을 텐데.”
“너무 띄워주지 마. 그리고, 키드를 잡고 나면 차례차례 가겠지, 뭐. 여기도 언젠가는 돌아올 테고.”
“선배는, 그렇게 키드가 잡고 싶어요? 하기야, 몇십 년 동안 아무도 못 잡았다니까 형사의 마음을 자극하는 범죄자이긴 하죠.”
아오코의 눈동자가 데로록 좌우로 굴렀다. 찌그러진 캔을 잡고 커피를 홀쟉이던 아오코가, 좋은 답을 구했는지 입을 열었다.
“그런 말도 있잖아? 사진사가 좋은 사진을 찍는 좋은 방법은, 피사체를 사랑하는 거라고.”
“어디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해요.”
“형사도 똑같은 거 아니겠어?”
요시카와가 맥락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선배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러지… 라는 얼굴이었다. 아오코가 꿋꿋하게 웃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쫓는 것처럼 범죄자를 쫓아야 하는 거지.”
“네, 네에-, 알겠습니다.”
요시카와가 익숙하다는 표정으로 허허 웃음을 지었다. 아오코 선배의 엉뚱한 말과, 키드에 대한 이유 모를 집착은 이제 익숙하다. 그리고 저 엉뚱함과 근거 모를 자신감이, 저 같은 사람마저도 결국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녀라면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선배는 꼭 잡으실 거예요.”
그 말에는 아오코도 웃었다.
04.
뉴욕은 밤에 더 빛나는 도시라지만, 그 빛이 더러운 뒷골목까지 비춰주는 것은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에, 새하얀 망토가 펄럭거렸다. 쫓아오는 건 하나, 아니, 둘인가…. 오늘따라 끈질기네. 헬기가 떠 있어서 행글라이더로 도망치긴 힘든데 말이야. 상황이 점점 길어질수록, 제대로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건 이쪽만이 아닐 것이다. 키드가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뭐, 아무리 끈질겨도 그 녀석만 하겠느냐마는…. 카이토는 머릿속으로 금발의 재수 없는 면상을 떠올리다가 못 볼걸 봤다는 듯 인상을 구겼다. 안 그래도 지난번 범행 때도 쫓아오는 바람에 꽤 애를 먹었다. 이제 저쪽도, 점점 내 패턴을 꿰뚫어가고 있어 상대하기 까다롭단 말이야. 하지만 그 녀석에게 비밀을 지켜주는 점은 역시, 고맙다고 해야겠지….
그러고 보니 지난번 범행 때는 그런 말도 했었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뭔가를 말할 듯이 주저하더니, 끝내 알려주진 않으며 이런 소리나 해댔지.
‘이래야 그녀가 날 조금이라도 덜 원망하지 않겠어?’
그 순간, 골목 틈에서 튀어나와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남자와 그 손에 들린 시퍼런 칼날에 키드가 겨우 잡념에서 빠져나왔다. 이런 상황에 딴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있었다. 혀를 차며 다급히 키드건을 꺼내 들려는 찰나였다. 반대쪽에 서 있던, 한패인 남자가 짧은 비명을 질렀다. 키드와 남자가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자, 어둠 속에서 튀어나와 있는 하얀 손이 남자의 양팔을 뒤로 젖히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이 있는 줄 몰랐는데. 그건 저쪽도 마찬가지였는지, 남자는 당황하는 얼굴을 숨기지도 못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제압한 남자의 목덜미 쳐서 기절시키더니, 곧바로 키드와 대치한 남자에게로 달려들었다. 남자가 들고 있던 칼이 발길질에 쨍-하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뒹굴었다. 인영의 정체는, 여자였다. 여자의 검은 머리칼이 흐트러짐과 동시에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넋이 나가 있던 키드가, 그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직 꺼내 들지는 않았지만, 옷 위, 명치 부근에 보이는 저 윤곽은 분명 총이었다. 형사인가, 아니면 저쪽과 관련 있는 다른 패거리인가? 패거리라고 하기에는 움직임이 마피아 같지 않게 정석적이고 깔끔하긴 했다.
‘그렇다면 형사인가….’
형사가 여기까지 쫓아오다니. 끈질긴 놈들이 사방팔방으로 한두 명이 아니네. 키드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아니, 그러려고 시도는 했다. 자신 쪽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린 여자에게 순식간에 잡히기 전까지는.
아니, 아니지. 잡혔다는 건 너무 완곡한 표현이었다. 여자는 말 그대로 키드에게 물소처럼 ‘들이박았다’ 온몸을 사용해서 부딪히는 체중에, 키드가 피하지도 못하고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멱살을 잡아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체격이 작은 쪽으로 끌어당겨 지는 바람에, 키드의 몸이 아래쪽으로 크게 휘청거렸다. 부딪힌다! 다음에 이어질 충격을 기다리며 질끈 눈을 감았으나, 다행히도 닿기 직전에, 여자의 다른 쪽 손이 키드의 어깨를 받쳤다. 그래봤자 손톱만큼의 틈새였다. 제일 먼저 본 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고양이처럼 푸른 눈이 빛났다. 어쩐지, 그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달을 가리던 구름이 걷히고 골목길 틈으로 흐린 달빛이 스며든다. 그리고 드러나는, 한 번도 잊어본 적 없는 얼굴.
“잡았다!”
아오코가 환하게 웃었다.
***
아오코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 이후, 일본에는 발조차 디디지 않았으니까. 거의 7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으나, 알아보지 못할 수가 없었다. 아오코는 조금도 변하지 않은 채, 카이토의 기억에 남아있는 그대로였으니까.
“너는….”
하지만, 감동적인 재회의 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오코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더니 키드의 눈앞에 펼쳐 들었다. 물론, 키드도 잘 아는 물건이었다
.
‘설마, 저 익숙한 물건은.’
“ICPO의 나카모리 아오코다. 이번에 키드, 네 전담이 되었지.”
“형사?”
누가?
아오코가?
아오코가, 형사라고? 이번만큼은, 키드가 포커페이스도 잃고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 저 멀리서, 하쿠바 놈이 비웃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설마 그 자식, 이래서 말 안 해준 거야? 어쩐지…. 평소보다 더 재수 없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오코가 형사가 된 것도, 제 전담으로 들어온 것도 놀랄 노 자였지만, 그것도 이 상황을 벗어난 다음 생각할 일이었다.
“나카모리 경부님과 성이 같은 걸 보니, 그분의 따님이신가요? 저희 구면이죠?”
키드가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팔을 움켜쥐고 있는 아오코의 손은 요지부동이었다. 하는 수 없지….
“저는 형사란 분들은 잘 모르지만….”
“….”
“이렇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쫓아와 주시고 계셨다니, 영광이네요.”
아니나 다를까, 아오코가 썩어들어가는 표정을 지으며 키드의 팔을 잡은 손을 놓았다. 그도 모자라 키드를 잡았던 손을 옷에 문질러 닦기까지 했다. 저기, 좀 너무하지 않아?
“여기 사람들은 널 하얀 신사라고 부르던데.”
“제 수많은 별명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넌 키드가 어울려. 조금도 어른스럽지가 않잖아.”
아오코의 독설에도 키드는 여유로운 웃음을 내걸 뿐이었다. 속을 파악할 틈조차 주지 않는, 키드다운 미소를. 그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아오코의 푸른 눈이 꿰뚫듯 그를 노려보았다. 결국 먼저 시선을 피한 쪽은, 키드였다.
“그래, 어른스럽지 못한 아이(Kid)씨. 내가 쫓아와 줘서 영광이라면, 순순히 잡혀주는 게 어때?”
“절 아가씨의 새장에 가둬주시기라도 할 건가요?”
“원한다면.”
아오코가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감옥이나, 새장이나. 철장이 있다는 점은 비슷하지 않겠어?”
“튼튼한 새장을 준비하셔야 할 것 같은데요.”
키드가 아오코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 올렸다. 차가운 입맞춤이 손 위에 가볍게 내려앉았다. 마치, 새처럼.
“제가 아무리 키드지만, 몸은 어른이니까요.”
그 말에 아오코가 볼을 붉히고서 키드를 걷어찼다. 키드가 차마 피하지도 못한 채 속으로 비명을 꾹 삼켰다. 아, 힘만 더 세졌잖아…. 아오코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아가씨 말고 형사님이라고 똑바로 불러.”
아오코를, 아오코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부르라니, 어쩐지 낯설었다. 어차피 제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할 이름이었지만, 속으로나마 되새길 때도 아오코는 아오코였으니까. 하지만 키드는, 카이토가 아니니까.
“네네, 나카모리…형사님.”
“아오코라고 해! 나카모리는 두 명이니까.”
아오코의 말에, 키드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쩐지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읽은 것 같아서.
“알겠습니다. 아오코 형사님.”
누군가가 자신을 쫓는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쁠 수 있는 것도, 그것이 너이기 때문이겠지. 너를 탓하는 건 아니지만, 너는 늘 내 마음의 속도에 비해 느렸으니까. 늘 네 앞에서 조바심을 내기만 했는데. 지금은 네가 나를 쫓아와 주겠다고 말한다. 그것이, 쿠로바 카이토를 향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은 기뻤다.
“그럼, 달이 빛나는 밤에-….”
“또 만나, 키드.”
그땐 네 손목에서도 이게 빛나고 있을 테니까. 아오코가 활짝 웃으며 수갑을 흔들거렸다. 달빛을 등지고 있어 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마, 이번에는, 웃고 있겠지.
“또 뵙죠, 아오코 형사님.”
달을 쫓아 달리다 보면, 또 만나게 되겠지. 오늘 달리다 지쳐도 이젠 상관없어. 내일도 달은 뜰 테고, 너도 날아오르겠지. 그럼 나는 또 네 날개를 뜯기 위해 쫓아갈 거야. 아무리 네가 날아올라도, 말이야. 아오코가 어쩐지 근질거리는 손바닥을 꽉 쥐었다. 두 개의 달이 뜬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