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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이토와 아오코가 20대 후반 성인이라는 설정의 현대 AU.

- 판도라는 없다는 설정

 

Fall In Love

​젤

 

0.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보이는 건 어둠 속에 나타난 한줄기 빛에 비추어져 밝은 모습을 겨우내 찾고 있는 하얀 천장이었다. 그때 번쩍 빛나더니 천장 위로 수많은 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던 나카모리 아오코는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빛이 들어오는 창문 너머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오코는 눈을 찡그리며 창문 밖에서 들어오는 빛의 정체를 찾았다. 세차게 비가 내리는 거리 위에서 외로이 빛을 비추고 있던 하얀 가로등이었다. 그 순간 얼굴에서부터 목, 그리고 어깨와 팔을 통해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오코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며 추위에 떨었다.

“......”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아 뒤척이다가 겨우 잠들었는데. 내가 어쩌다 깨버렸더라. 뼛속까치 사무칠 정도로 시려오는 우울감에 아오코는 멍하니 창문 밖에 선 채 비가 내리는 밖을 바라보았다. 톡. 톡. 토도독. 비가 유리창과 창틀을 치고 내려가는 소리는 아오코의 귀를 집중시키게 만들었다.

“비...라.”

순간 아오코의 머릿속에서 어떤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그녀는 빗속에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우산을 겨우 들어 터벅터벅 걸어가던 그 날이. 그 생각이 떠오르자 아오코는 입술을 깨물며 하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괜히 떠올려버렸어.’

아오코는 고개를 저었다. 얼른 그 생각을 지워내고자 서둘러 다른 데 집중하기 위해 묵묵히 비가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톡. 톡. 다시 소리에 집중하자 빗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빗소리를 감상하던 아오코의 눈앞에 창밖 너머로 누군가 우산을 쓰며 허겁지겁 달려가는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꽤 늦은 새벽인데 바깥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네.’

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밖에서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아니면 일을 하러 갈...리는 없겠지.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턱을 괸 채 그 모습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곧 이어 그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고 다시 빗방울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문득 그 소리가 마치 입안에서 슈팅스타 아이스크림이 톡톡 터지는 소리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슈팅 스타라..’

그러고 보니 그거 안 먹어본 지 꽤 되었는데. 내일 출근길에 하나 사갈까? 아오코는 풋 하고 웃으며 ‘다시 자러 가야지.’ 라고 중얼거리며 얼른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까지만 해도 이유 없이 우울했는데, 먹을 걸 생각하니 언제 그런 생각을 했냐는 듯 기분이 나아졌다. 역시 먹을 게 최고지.

‘내 폰을 어디에 뒀더라?’

아오코는 베게 옆에 놓여 있던 스마트폰을 들어 노래 리스트를 틀었다. 이윽고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자 아오코는 스마트폰을 자신의 머리맡에 놓은 채 이불을 목 끝까지 덮으며 어떻게든 잠을 청했다.

 

1.

분명 눈을 감은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아오코는 졸린 얼굴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잠을 깨려 애썼다. 그 사이 시간은 많이 흘러있었다. 어두웠던 새벽은 간데없고 대신 환한 햇살이 아오코를 반기고 있었다. 아오코는 뭔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미운 표정으로 창문 밖을 쏘아보았다. 분명히 많이 잔 것 같은데 왜 이렇게 피곤한 거지? 아오코는 하품을 하며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비가 오지 않는 화창한 날씨였다. 그녀가 잠든 사이에 그친 것이 분명했다. 아오코는 부스스한 머리칼을 북북 긁으며 어기적어기적 화장실로 들어갔다. 더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오늘은 일찍 일어나야 했다. 늦었다간 분명 케이코가 왜 이렇게 늦었냐고 잔소리를 할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출근에 앞서 아오코에게 정말 중요한 약속이 있었으니까.

*

“아오코! 여기야, 여기!”

모모이 케이코가 저 멀리서 걸어오는 아오코를 발견하자 손을 머리 위로 흔들며 그녀를 불렀다. 케이코의 손짓을 발견한 아오코는 방긋 웃으며 그녀도 손을 열심히 흔들며 인사를 했다. 아오코의 눈에 비치는 케이코는 몹시 설레고 기대로 가득 차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한편 아오코는 케이코의 손에 이끌린 채 지금부터 자신이 지금 가고 있는 어떤 장소에 대한 정보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마술?”

“응. 아오코도 알지? 일본에서 제일 유명한 마술사 있잖아.”

“어...누구더라?”

아오코가 진땀을 빼며 손가락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그러자 경쾌하게 걸음을 옮기던 케이코의 발걸음이 순간 멈추었다. 그리고 그녀의 안경 너머로 연갈색의 동그란 눈빛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오코를 뚫어지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케이코의 눈빛을 한 몸에 받자 아오코는 마치 자신이 뭔가를 잘못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엥? 아오코, 너 정말 모르는 거야?”

“어..모르겠는데?”

“어머어머, 그 유명한 마술사 [괴도 키드]를 모른다는 말이야? 그 사람이 선보인 마술들이 얼마나 극찬을 받았고 큰 충격을 주었는데!”

케이코가 놀라면서 말했다.

“뭐 어때, 모를 수도 있지.”

아오코가 살짝 삐진 듯 입술을 쭉 내밀며 말했다.

“헤에, 그럴 수도 있겠다. 아오코는 밤에 바텐더 일을 하느라 늘 바쁘니까.”

오늘도 아오코가 나를 위해서 겨우 시간을 빼준 건데. 케이코가 미안한 듯 한번만 봐달라고 말하는 듯 아오코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이런 점이 케이코의 매력이었기에 아오코도 그래그래 하며 케이코의 머리를 쓰담해주기 시작했다. 마침 아오코의 눈에 늘 그녀가 출근길에 꼭 들르던 카페가 눈에 띄었다.

“커피 한 잔 사들고 갈래?”

“어, 콜.”

아오코의 제안에 응하며 케이코는 그녀의 옆에서 괴도 키드라는 마술사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일단 케이코의 말을 빌리자면 그 괴도..뭐라고 했지? 그 마술사는 꽤 몇 년 전부터 갑자기 등장하면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마술사가 유명해진 이유는 단연 뛰어난 실력도 있었지만 가장 유명한 건,

대중에 얼굴을 단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얼굴?”

“응, 그 사람은 마술을 시연할 때 새하얀 정장을 입는데 반드시 하얀 모자를 쓰고 한쪽 눈에는 모노클을 끼운 채 시연을 해. 그래서 방청객들도 그 마술사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어. 그래서 괴도 키드는 ‘얼굴 없는 마술사’ 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지.”

케이코가 열심히 설명을 해주며 말했다. 그리고 끝으로

“그리고 우리는 지금부터 괴도 키드의 마술쇼를 보러 가는 거야!”

케이코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들이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커피를 슬리브 안에 끼운 채 다시 밖으로 나선 아오코의 눈앞에 케이코가 자랑스럽다는 듯이 티켓 두 장을 흔들어서 보여주었다.

“이걸 얻기 위해서 정말 티켓팅과 손가락 운동을 열심히 했어. 판매 두 시간 전부터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기다리다가 정각 딱 되자마자 재빠르게 손가락을 튕기는데...”

케이코가 자신의 티켓팅 무용담을 들려주며 그 중 한 장을 아오코에게 주었다. 티켓에는 새하얀 바탕에 [BLUE]라고 쓴 크게 파란색 글씨가 티켓의 정중앙에 쓰여 있었다. 그리고 그 대각선 아래로 괴도 키드의 캐리커쳐로 추정되는 귀여운 그림이 작게 그려져 있었다. 긴 모자 아래로 모노클을 쓴 채 이빨을 드러내며 개구쟁이처럼 웃고 있는 두상 캐리커쳐였다. 아오코는 이것을 보고 개구쟁이 같은 마술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이름도 ‘키드’이고 하니까.

 

2.

“하하..”

극장에 도착한 아오코는 케이코가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으로 티켓을 얻는데 성공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어떻게든 극장에 들어가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규모로 진행되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다니, 케이코의 말에 의하면 공연 한 타임에 관람할 수 있는 관람객들의 정원은 200명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엄청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

아오코가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거기다 케이코가 예약한 좌석은 무려 VIP석. 맨 앞에서 마술사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좌석이었다.

“심지어 VIP석으로 예약했었다고?”

“응. 이런 중요한 공연을 일반석에 앉아서 볼 수는 없잖아!”

케이코가 활짝 웃으며 티켓에 적힌 좌석을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아오코는 그런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야..그래도 난 괜찮은데. 그럼 너 돈 엄청 깨지지 않았어?”

아오코가 당황한 기색을 엿보이며 말했다. 일반 가수들의 공연 VIP석 가격만 해도 족히 몇 만 엔은 넘을 텐데..그 가격이면 살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 몇 십 개인데! 그때였다.

“이렇게라도 해서 너 기분 좋게 해주고 싶어서 그래.”

케이코가 갑자기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갑자기 달라진 분위기의 케이코의 뒷모습에 아오코는 조금 흠칫했다. 길게 늘어뜨린 그녀의 연갈색 머리칼 너머로 약간 고개를 숙인 듯한 케이코의 고개가 얼핏 보였다. 잠시 후 케이코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혹시 케이코가 화가 난 게 아닐까 생각했던 아오코는 안경 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안타까운 눈빛에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너...가끔씩 짓는 얼굴 표정 있잖아.”

“어..?”

“그 표정을 짓더라.”

“....”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

케이코가 살짝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오코는 케이코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케이코는 조금 아오코의 눈치를 보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벌써 몇 달 째야.”

“.....”

“그 날 그렇게 비참하게 당하고도 아직도 그렇게 우울하게 지내고 있으면 어떡해.”

“.....”

“일하는 날 아니면 계속 집에만 있고, 나 이외에는 다른 사람 만나는 것도 피하고.”

“.....”

“언제까지 이러고 살 수는 없잖아. 아오코. 그 나쁜 X놈들 앞에서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지.”

케이코의 말에 아오코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기만 했다. 그녀의 말이 맞다. 하지만 머리와 다르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마음속엔 행복했던 추억이 남아 있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아오코는 홀로 시간이 멈춘 채 제자리걸음을 하며 살아왔었다.

“곧바로 변하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응?”

“나도 잘 알아. 마음이란 게 나 자신도 잘 알지 못할 만큼 너무 갈팡질팡해서 그걸 컨트롤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

“그래도, 아오코. 난 네가 계속 우울한 모습이 아닌 밝은 모습을 보여주며 지냈으면 좋겠어.”

케이코가 쓰게 웃으며 아오코의 손을 잡았다. 아오코는 자신의 손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꼈다.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친구의 모습에 감동을 받으면서도 고마웠고 그리고 미안했다.

“에휴, 그래도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 게 아닌 걸 감사해야 하나? 그 있잖아. 난 널 못 잊어- 하면서 매일 매일 술 마시는..”

“케이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건 아니지.”

“크크크크, 하긴 그런 면은 아오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까 말이야.”

조금 어두워졌던 분위기는 케이코의 농담으로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다. 이제 공연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두 사람은 다시 좌석을 찾기 시작했다. 자리는 무대에서 1m 정도 떨어져 있는 맨 앞줄에 있었다.

“야아..이렇게 맨 앞에 앉아 보는 건 처음인데.”

아오코가 실감이 나지 않는 듯 자리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케이코 역시 그녀의 말에 동감해주며 나란히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 아오코는 맨 앞보단 맨 뒤를 좋아하지 않았나요. 그 왜, 고등학교 2학년 때 선생님 눈 피해서 우리..”

“야, 조용히 해.”

두 사람은 큭큭거리며 잠시 잡담을 하는데 갑자기 틱 소리와 함께 극장에 있던 모든 조명이 꺼졌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어둠에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무대 중앙으로 조명이 켜짐과 동시에 소란스러웠던 극장은 한순간에 조용해졌고 아오코는 무대 위에서 하얀 조명이 비추고 있는 검은색 책상 하나를 발견했다.

 

3.

무대의 정중앙에 놓여 있는 검은 책상. 분명 아오코가 좌석을 발견하고 앉았을 때에는 무대 위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언제 그새 이걸 올려놓은 건지. 아오코는 신기한 듯이 책상을 바라보았다. 곧 이어 두 번째 조명이 켜졌고 그 빛은 웬 새까만 형체의 누군가를 향해 비춰지기 시작했다.

‘응?’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 옷, 검은 바지, 검은 운동화를 입고 있는 한 남자가 아오코의 눈에 들어왔다. 검은 군모를 쓰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딱 붙는 검은 목 티로 보이는 다부진 체격이 아오코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화악- 아오코는 자신의 얼굴에 불이라도 덴 것 같은 기분을 받았다.

‘아우 미쳤나봐.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아오코는 고개를 저으며 얼른 공연이나 시작하기를 바라며 황급히 시선을 남자의 머리 쪽으로 돌려버렸다. 군모 밑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머리에 아오코는 풋 하고 웃음을 지었다. 아오코의 눈에는 남자의 모습이 마치 집안으로 몰래 침입한 도둑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한편 남자는 긴 다리를 쭉쭉 앞으로 내밀며 천천히 검은 책상을 향해 다가갔다. 스윽- 검은 장갑을 낀 남자의 손이 책상을 슥- 훑기 시작했다. 드디어 무언가를 하려는 건가. 아오코는 살짝 기대에 찬 눈으로 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후두둑.

그때 무대 위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커졌고 무대 위의 사람들은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수많은 물방울들. 그것은 비였다. 비는 남자와 책상을 향해 하염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어?’

비에 젖은 남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던 아오코는 순간 그때의 일을 다시 떠올려버리고 말았다. 매몰차게 자신을 버리고 보란 듯이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은 채 냉정하게 떠나 자신 홀로 차가운 빗속에서 남아있었던 그 날이 생각났다. 순간 아오코의 기대에 찬 얼굴은 다시 절망에 물든 표정으로 바뀌었고 그녀의 입술은 다시 질근 깨물렸다. 아냐, 왜 이러는 거야, 아오코. 정신차려. 즐겁게 공연 보러 왔는데 왜 또 그 일을 떠올리고 있는 거야. 안 돼. 울지 마. 정신 차려. 어서 공연에 집중하자고. 이렇게 생각하며 흔들렸던 동공을 겨우 진정하고 다시 앞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

‘응?’

마침 무대 위의 남자는 딱 아오코가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서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살짝 숙여진 고개의 각도로 보아선 남자는 지금 아오코를 빤히 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 뭐야. 저 사람.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건가?’

당황한 아오코는 아까 자신이 슬픈 기억을 떠올렸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 눈을 깜박이며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까 나 좀 운 것 같았는데..설마 본 건 아니겠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조용했던 관내에서 부드러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시선을 아오코에게로 고정하고 있었던 것 같았던 그의 얼굴은 이내 옆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애처로운 손짓으로 사람들을 주목시키기 시작했다. 그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기자 아오코는 왠지 모르게 안심이 되어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한편 인공적으로 내리는 빗속에서 현대무용을 하는 것 같은 동작을 취하던 남자는 두 손을 모아 흘러내리는 비를 받아들이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순식간에 손 안에서 주먹만 한 투명한 구슬을 만들어내었다.

감탄을 하는 관중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가 만들어낸 투명한 구슬은 안에 파란 보석을 품으며 다채로운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예쁘다..’

아오코는 저도 모르게 그 구슬에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몸을 앞으로 당겼다.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졌다. 남자는 그 구슬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며 구슬을 들고 있지 않은 반대 쪽 손을 들어 여전히 위에서 내리는 빗물을 손으로 받아내며 그 빗물을 품은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꽉 쥔 주먹을 풀면 아까 그 구슬과 똑같이 생긴 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자가 두 개의 구슬을 만들어내자 인공적으로 내리던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남자는 그 구슬로 이리저리 묘기를 드러내며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남자는 갑자기 두 구슬을 위로 던지더니 손가락 두 개를 튕겼다. 그러자 투명한 구슬은 마치 풍선이 터진 것처럼 팡 소리와 함께 물방울로 변해버렸고 대신 안에서 예쁜 빛을 발산하던 파란색 보석 두 개가 놀랍게도 천천히 그의 손바닥을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Ladies and Gentle Man.”

묵묵히 마술만을 펼치고 있던 남자의 입이 열리더니 새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밝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잔잔한 음악 대신 신나는 음악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남자는 천천히 떨어지던 파란색 보석 2개를 낚아채듯 오른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러자 연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남자의 모습을 감쌌고 남자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뭐, 뭐야...어디로 사라졌지?”

아오코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열심히 무대를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내 자욱했던 연기가 걷히면 아까까지만 해도 서있었던 남자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 멍하니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머! 세상에! 아오코!!”

그때 옆에서 외마디 비명을 지르는 케이코의 목소리에 아오코는 순간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환영인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아오코의 바로 앞에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정장을 입고 푸른 셔츠에 빨간 넥타이를 점잖게 맨 채 외안경과 기다란 하얀 모자를 쓴 아름다운 마술사가 아오코의 바로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오코는 어벙한 표정을 지으며 멍하니 마술사 괴도 키드를 바라보자 그는 개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제 마술쇼에 와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Lady.”

이 말을 끝으로 그는 손쉽게 두 손으로 파란 장미 한 송이를 만들어내더니 그것을 아오코에게 건네주었다. 자신을 향해 들어온 파란 장미와 그리고 모자챙의 그림자로 인해 얼굴이 보이지 않는 마술사를 번갈아 보던 아오코는 얼굴이 붉어진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4.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아오코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파란 장미, 다른 한 손에는 가방을 손끝으로 겨우 쥔 채 출근하고 있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장미를 받아낸 후 공연을 어떻게 봤는지 그녀 역시 잘 몰랐다. 그는 아까 어두운 빗속에서 구슬을 만들어내던 인트로와는 달리 본작에선 이와 정반대로 밝고 신나는 마술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주며 여기저기 날라 다니는 하얀 비둘기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그때 아오코는 마술보단 마술을 펼치던 괴도 키드에게만 시선을 집중했었다. 2시간은 아오코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흘러갔다. 공연이 끝나자 아오코는 아쉬움의 탄성을 내며 파란 장미를 꼭 쥐었다. 그 후로 한동안 붉어진 얼굴 때문에 케이코의 장난과 놀림을 받았던 게 불과 30분 전이었다.

‘어때, 직접 보니까 재밌지?’

공연을 끝나고 나서 물었던 케이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라, 얼굴이 붉어져 있잖아? 혹시 아오코, 괴도 키드에게 반한 거 아니야?’

이번엔 자신을 놀리던 케이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간만에 너의 새로운 표정을 보니까. 기분이 좋다. 역시 널 여기로 데리고 오길 잘했다니까?’

‘너도 한번쯤은 기분 전환 겸해서 새로운 걸 한번 접해봐. 똑같은 일상만 겪는 건 재미없잖아.’

“..그러게.”

케이코의 말이 맞는 것 같다. 아오코는 잠에서 깨어난 듯 살풋 웃으며 파란 장미를 조심스럽게 가방 속에 넣었다. 어느새 동쪽으로 떴던 해는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어서 서둘러야겠다고 아오코는 얼른 발을 바삐 움직였다.

“아 맞다! 슈팅 스타!!”

그 전에 매점부터 가자하며 급히 방향을 바꾸면서.

 

어느새 밝았던 해는 산 속으로 부끄러운 둣 숨어들었고 대신 하얀 보름달이 하늘을 예쁘게 비추었다. 그 아래로 즐거운 분위기를 내는 거리를 살펴보면 그 중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곳이 있었다. 노란 조명으로 <Flail Novel> 이라고 적힌 가게는 밤에만 운영하는 펍(PUB)의 느낌이 나는 칵테일 바였다. 노래방에서 볼법한 조명 볼 아래로 알록달록한 조명과 신나는 음악 아래로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그들의 테이블에는 간단한 과자 혹은 비싼 안주들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색깔의 칵테일들이 놓여 있었다.

“바니! 3번 테이블에 ‘네그 로니’ 하나, ‘미녀는 사랑을 싣고’ 하나!”

뿔테 안경을 쓴 매니저가 아오코에게 손가락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소리쳤다. 아오코는 알았다는 사인을 하며 바로 테이블을 정리하며 거침없이 드라이진을 잡았다. 아오코는 ‘플레일 노벨’에서 바텐더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불리 우는 그녀의 이름은 ‘바니’. 토끼 눈을 닮아 톡톡 튀고 귀여워 보인다는 직원 사람들의 추천으로 지었다. 정성을 들여 만들어낸 칵테일이 자랑스러워 보인다는 듯 아오코는 ‘댄’이라고 적힌 명찰을 달고 있는 남자를 불러 이것을 손님에게 가져다주라고 지시했다. 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 손으로 쟁반에 술을 올린 채 3번 테이블에 앉아 있는 커플에게로 다가갔다.

“후...”

오늘따라 붐벼 보이는 바 분위기에 아오코는 오늘도 칼 퇴근하기엔 글렀다고 생각하며 서둘러 다음 주문을 확인하며 필요한 재료를 찾기 시작했다.

“바니! 오늘 무슨 기분 좋은 일 있으세요? 얼굴이 평소와 다르게 굉장히 밝아 보여요!”

아오코와 같이 일하는 또 다른 동료 직원 ‘헤시’가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어머, 헤시가 보기에도 그래 보여요?”

“그럼요, 왜냐면 바니는 요즘 평범한 표정을 짓는 모습만 자주 보아왔으니까요.”

“하하하..제가 그랬던가요?”

“그런데 오늘은 달라 보여요. 바니의 웃는 얼굴 몇 달 만에 보는 건지 모르겠어요. 좋아 보여요.”

헤시가 눈을 찡긋 하며 웃으며 마침 그녀의 맞은편 바에 앉아 있던 고객의 주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아오코는 새로 주문이 들어온 칵테일을 만들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게. 오늘따라 나 되게 기분이...좋은데?’

이런 컨디션이라면 새벽 5시까지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 아침 만해도 피곤해서 미칠 것 같았었다. 그런데 저녁이 되자 그런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날 정도로 기분이 좋았고 기운은 넘쳐날 정도로 팔팔했다.

‘케이코가 보여준 마술쇼를 봐서 그런가? 아님 그 마술사가 나에게 꽃을 줘서?’

그때 한번쯤은 기분 전환 겸해서 새로운 걸 한번 접해보라던 케이코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가. 오랜만에 새로운 걸 접해봐서 그런가보다. 케이코의 말대로 한번은..공연 같은 것도 보러가는 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간만에 느껴보는 좋은 기분에 아오코가 포만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때 현관문에 종이 울리며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매니저가 활기차게 웃으며 손님을 맞이했다. 손님은 젊은 남자였는데 일행도 없이 혼자였다. 그저 조용히 한 잔 마시고 가거나 직원과 대화하려고 오는 사람이겠지. 아오코는 그렇게 생각하며 음료와 얼음이 든 쉐이커를 흔들었다.

“저기요.”

그때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아오코는 네- 하며 밝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녀를 부른 사람은 바로 아까 가게로 들어온 새로운 손님이었다. 그는 깔끔하게 검은 정장에 하얀 셔츠, 그리고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다만 이에 어울리지 않은 곱슬 머리카락은 조금 흐트러진 채 몇 가닥이 공중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머리 정리 좀 했으면. 그나저나 저 곱슬머리 어디선가 본적 있는 것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남는 자리가 여기 하나 뿐인 것 같은데. 여기 앉아도 되나요?”

남자가 가리키는 자리는 바로 직원과 마주보면서 대화가 가능한 바 테이블이었다. 마침 남아있는 자리는 아오코가 서있는 맞은편 자리였다.

“네, 물론이에요.”

아오코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자리에 털썩 앉았다. 뭔가 피곤에 찌든 것 같은 모습에 아오코는 뭔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판 드릴까요?”

“음.. 메뉴판 보다는.”

“...?”

“아가씨가 추천해 주는 걸 마시고 싶은데요.”

한 손으로 턱을 괸 남자의 푸른 눈동자가 기대에 찬 눈으로 아오코를 향하며 말했다. 응? 갑작스러운 남자의 말에 아오코는 잠깐 눈을 깜박였다.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유지했다.

‘우리보고 맛있는 걸 추천해달라는 손님들도 꽤 있었으니까.’

어떤 걸 추천하지 하고 잠시 고민하는데 순간 아오코의 머릿속에서 괴도 키드가 만들었던 투명한 구슬 속에서 빛나던 파란 보석이 떠올랐다. 그 생각에 아오코는 거침없이 손을 뻗어 길쭉한 잔을 집었다.

그로부터 잠시 후, 아오코의 손에서 바다처럼 파란 빛을 띄는 칵테일이 완성되었다. 조그만 받침대 위에 올려서 남자에게 가져다주자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는 흥미롭다는 듯 칵테일에 시선을 옮겼다.

“호오. 이건...”

“<블루 사파이어>입니다.”

“알죠.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칵테일 중 하나가 아니겠어요?”

“오, 손님께서도 이미 마셔본 적이 있으시군요?”

“당연하죠, 어떤 맛인지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어머, 그럴 줄 알았으면 다른 걸로 추천해드릴 걸 그랬나 봐요.”

이미 접해보았다는 그의 말에 아오코가 아쉬운 듯이 말하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아가씨에게 괜찮은 걸 추천해 달라고 말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아가씨 이름이...”

“바니 라고 부르시면 되요.”

아오코가 검지 손가락으로 자신의 가슴에 달린 명찰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자 남자는 아쉬운 듯 고개를 저었다.

“흠..아쉽군요. 내가 알고 싶은 건 아가씨의 진짜 이름인데.”

“예?”

조금 당황했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실명을 물어보는 손님이 어디 있겠는가. 작업을 거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러면 실례가 될 수 있으니까 참을게요. 음..그러니까..바니?”

“네, 손님.”

“카이토.”

“네?”

“제 이름은 쿠로바 카이토입니다. 카이토라고 불러주세요, 바니.”

아오코와 말하는 동안 카이토의 눈에서는 단 한 번도 아오코가 떠나지 않았다. 마치 그녀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듯 해맑은 어린아이처럼 방긋 미소를 지으며 자기 소개하는 카이토의 모습을 본 아오코는 긴장이 풀리며 제대로 카이토와 눈을 마주하였다.

“좋아요. 카이토.”

이때까지만 해도 아오코는 그저 쿠로바 카이토가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독특한 손님이라고만 생각했었다.

 

5.

그로부터 몇 주의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어느새 쿠로바 카이토는 <플레일 노벨>의 단골손님이 되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카이토가 하루도 빠짐없이 들르자 매니저는 새로운 단골이 더 늘었다며 좋아했고 동료 직원 헤시와 댄은 혹시 그가 아오코에게 마음이 있는 거 아니냐며 그녀를 놀리곤 했다.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아오코가 입을 내밀며 부정했지만 간만에 달라져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그들은 좋은 징조라면서 기대에 찬 눈빛으로 말했다.

“그래도 바니. 그 손님이 오고 나서부터 바니 전보다 많이 밝아졌어요. 그..있잖아. 바니 지금 그 눈빛이에요.”

“?”

“관심이 있는 눈빛?”

헤시의 말에 아오코는 ‘절대 그럴 일 없네요.’ 하면서 ‘자, 어서 문 열 준비해요.’ 하며 헤시를 등 떠밀었다. 아닌데 하며 헤시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곧 오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아오코는 더운 느낌에 서둘러 손바닥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문득 벽에 걸린 거울을 본 아오코는 자신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있는 것을 보고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

“바니,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찾아와 그녀가 서있는 맞은편에 앉아서 그녀에게 추천받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신 카이토가 입을 열었다. 오늘은 <다이퀴리>를 추천해주었다. 늘 항상 카이토에게 말상대를 해주었던 아오코였기에 직장 동료들은 일부러 그녀에게 카이토를 고객으로써 집중하도록 필요한 일이 아닌 이상 자리를 떠나야 하는 일을 시키지 않았다.

“오늘은 또 무슨 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시는 걸까요? 카이토.”

“왜 ‘플레일 노벨’인가요?”

“음?”

“Flail Novel이라. 흠..번역하자면 뒤흔들리는 소설이라고 해석하면 되나요?”

“네, 그렇죠. 다른 바에 비해선 좀 특이한 이름이긴 하죠.”

아오코가 씻은 잔을 수건으로 닦으며 천장에 매달려 있는 잔 받침대 아래에 잔을 매달아 올려놓으며 말했다. 사실 카이토가 물어보기 전까지 아오코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의 이름에 대해서 자세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보통 다른 바에 비해 독특한 이름을 가진 것 정도로만 여겼을 뿐이었다.

‘이 사람...’

정말 특이한 사람이야. 아오코는 그러려니 하고 여기기로 했다. 그나저나 이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하는데. 뭐라고 답해줄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의미가 아닐까요.”

“?”

“흠..그러니까 여기처럼 칵테일 바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저마다의 목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예요. 칵테일을 처음 마셔보기 위해 방문하는 새내기 학생들, 혹은 분위기 좋은 곳을 선호해서 찾아오는 친구들이나 커플들, 혹은 혼자서 간단하게 한잔 정도만 마시고 가려는 사람들도 있고 자기처럼 혼자서 마시는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니면...”

그때 아오코의 시선에 한 커플이 눈에 띄었다. 카이토가 앉은 자리에서 왼쪽으로 세 의자가 떨어진 곳에 앉아 있는 커플이었는데 얼굴을 자세히 보기 전까지는 아오코도 그냥 일반 커플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붉은 조명 아래로 어느 정도 연륜이 있어 보이는 40대 정도의 남자, 그리고 굉장히 화려한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입술을 새빨갛게 칠한 아오코와 또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다. ‘그래 뭐..불륜으로 의심되는 사람들도 자주 오는 곳이기도 하니까.’라고 아오코는 생각했다.

“...그 외의 목적도 있을 수도 있고요.”

“헤- 바니는 어쩌면 말도 이렇게 예쁘게 잘 하는 걸까요. 바니 주변의 사람들은 좋겠네요, 바니 같은 천사 같은 사람을 좋은 인연으로 둬서.”

“...제가 하는 말은 듣고 있는 건가요, 카이토?”

“아우, 아니죠.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아가씨.”

아오코가 미운 듯이 흘겨보며 눈썹을 치켜세우자 카이토는 손사래를 쳤다. 한편 가명이 아닌 아가씨라는 말을 들은 아오코는 속으로 조금 무언가 따끔거리는 것을 느꼈다. 뭘까 이 묘한 기분은.

“이렇듯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 감정을 지닌 분야들을 볼 수 있죠. 호기심, 설렘, 우정, 썸, 사랑, 기대, 그리고 뭐..아찔함 같은.”

“호오.”

“이런 감정들이 한 곳에 모두 모이면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 급이 되겠죠.”

“흐음..그렇겠네요.

“맞아요. 이곳에 목적을 가지고 오는 손님들은 어떻게 보면 감정을 지닌 장르와도 같아요.”

“....?”

“소설 장르처럼.”

“...!”

“로맨스, 스릴러, 개그, 판타지, 전쟁과 같은 장르들을 하나의 소설로 모은다면 그야말로 난리가 나고 혼란이 오가는 상황이 될 것이니까. 그야말로 뒤흔들리는 소설. 그것이 플레일 노벨이 아닐까요.”

아오코는 이렇게 말하며 카이토의 앞으로 동그란 잔을 탁 하며 내밀었다. 예쁘게 깎인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검은 액체의 칵테일이었다. 사실 아오코는 카이토에게 말을 하면서도 한손에 칼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그녀의 주먹 만한 차가운 얼음을 잡으며 얼음을 쥬얼리 모양으로 깎고 있었다. 곧이어 아오코의 손에서 석영 모양의 보석 얼음이 완성되자 그녀는 그것을 얼음크기만한 원기둥 유리잔에 넣곤 잔에 깔루아와 보드카를 넣어 휘휘 저은 채 그것을 카이토에게 내민 것이다.

“자, 제 두 번째 추천 칵테일, <블랙러시안>이에요.”

“이유는?”

“오늘은 꽤 진지한 이야기 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이번엔 독한 걸로. 오케이?”

논리적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그녀의 설명에 카이토는 풋 하고 웃으며 블랙러시안을 집었다. 한 모금 마시면 쓰디쓴 묵직한 맛이 카이토의 입안 속으로 골고루 퍼지기 시작했다.

“아, 그러고 보니 카이토는.”

“?”

“마술을 좋아하시나요?”

마술이라는 말에 잔을 들던 카이토의 손이 멈추었다. 이때 카이토의 파란 눈에서 환희로 물든 듯 눈꼬리가 휘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금 카이토는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었다. 항상 자신이 먼저 질문을 던지고 그녀가 대답해왔던 방식이었었는데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그는 애써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무심한 것처럼 행동했다.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힌 카이토는 씨익 웃으며 능글맞은 목소리로 물었다.

“마술이야..뭐 좋아하죠. 왜요. 바니는 마술 관심 있어요?”

“아..그건 아닌데..한..2주 전이었나요. 친구의 손에 이끌려서 어떤 마술사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어요.”

“오오 친구 분이 바니에게 좋은 경험을 하게 해주었군요.”

“그때 그 마술사가 제게 꽃을 주었죠.”

“.....”

“파란 장미였어요.”

아오코는 도마 위로 녹아버린 잔얼음 조각들을 치우며 그때 일을 그리워하는 듯 살풋 웃었다. 카이토는 묘한 얼굴로 아오코를 빤히 바라보며 조용히 그녀의 말을 기다려주었다. 한참 후 아오코의 입에서 나온 말은 카이토를 놀라게 했다.

“그 순간이 정말 잊혀 지지 않았어요. 그동안 슬픈 기억만을 안고 지내왔던 저에게 그 기억을 떨쳐버릴 수 있게 도와주었으니까요. 기회가 된다면 그 마술사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괴도 키드를.”

 

06.

그 말을 왜 카이토의 앞에서 이야기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오코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속으로 자책했다.

“아우 미쳤어 정말. 케이코 외에는 웬만해선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는데.”

아오코는 침대 위에 놓여 있던 베개를 주먹으로 팡팡 치며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어제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음에도 아오코는 어제 괴도 키드에 대한 이야기 이후로 술에 취한 듯 그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한 자신의 속마음을 전부 그에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때 카이토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아오코는 기억나지 않았다. 마치 술을 진탕 먹고 필름이 끊겨버린 것처럼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오늘도 그 사람이 가게에 올 텐데 얼굴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 들었다.

“잠깐만! 근데 애초에 내가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거지?”

아오코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퍼뜩 들며 질렀다. 그냥 사사로이 이야기를 나눈 것뿐이잖아. 그래, 이건 직원과 손님 간의 대화일 뿐이잖아. 어쩌다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자꾸 민망하고 부끄러운 기분이 드는 건 왜야.”

아아 진짜아!!!! 아오코는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으아악 하며 소리를 질렀다.

 

“...어라?”

입구만 흘끗 돌아본 게 벌써 2시간. 오늘은 웬일인지 카이토는 플레일 노벨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시간이 9시가 넘었음에도 오지 않는 그에 아오코는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왜 안 오는 걸까?

‘설마 내 이야기를 듣다 질려서 안 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하며 아오코는 망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바의 분위기가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것이 여간 이상했다. 보통 이때는 피크 타임인데.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이 없는 것 같지?

‘나야 뭐 덜 힘드니 좋기야 한데.’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일에 집중하려는 그때, 파트너 룸에서 먼저 쉬러 갔던 헤시가 흥분된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달려왔다. 그녀의 손에는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대박 대박 대바악!!!!! 다들 이것 좀 보세요!!”

헤시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아오코와 직원들에게 보여주었다. 화면에는 생방으로 진행되는 뉴스가 틀어져 있었다.

“어?!”

아오코는 화면 안에서 낯익은 사람을 발견하고 외마디 탄성을 질렀다.

“괴도 키드예요, 괴도 키드! 오늘 시오도메에서 갑작스런 야외 마술쇼를 펼치겠대요!”

“잠깐만 줘봐!”

헤시의 말을 뒤로하고 아오코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헤시에게서 핸드폰을 낚아채 폰 화면에다 눈을 가까이 다가갔다. 진짜 괴도 키드였다. 괴도 키드는 급하게 준비된 작은 단상 위에서 그를 보러온 사람들에게 정중한 인사를 하며 이내 조명 아래로 개구진 표정을 지으며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마술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를 알리기 시작했다.

<Ladies and Gentleman! It’s Show time!!!>

괴도 키드의 외침에 불꽃과 함께 사람들의 함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오코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애써 누르며 화면 속의 괴도 키드를 바라보았다. 이때 괴도 키드를 향하던 화면이 줌인이 되면서 괴도키드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

더 가까워진 괴도 키드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오코는 무언가를 발견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굴은 역시나 모자의 챙 밑으로 드리워진 그림자와 외안경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아오코의 시선을 고정한 것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모자 밑으로 툭 튀어나온 머리카락이었다.

‘이 곱슬 머리카락...’

가까이서 보니까 뭔가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오코는 깨달았다. 저 머리칼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그것도 최근에. 아오코는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화면 속의 괴도 키드를 바라보았다.

 

기다렸지만 결국 쿠로바 카이토는 플레일 노벨에 오지 않았다. 모든 손님을 다 내보내고 멍하니 바닥을 닦기만 하는 아오코의 모습에 동료 직원은 ‘바니 오늘 좀 이상하지 않냐’며 걱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쿠로바 카이토가 괴도 키드와 동일인물일 수도 있다는 가설로 가득 차 있었다.

‘저 특유의 곱슬머리. 아무리 봐도 카이토 씨의 곱슬머리와 비슷하게 생겼잖아.’

늘 올 때 마다 단정하게 차려입는 옷과는 다르게 머리카락은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은 채 흐트러져 있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기에 아오코는 머리 정리 좀 하라며 카이토에게 몇 번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하고 그녀는 재빠르게 청소를 끝냈다. 얼른 집에 가서 목욕물에 담근 채 푹 쉬고 싶었다. 그렇게 새벽 1시,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득 깜박 잊은 것이 있었는지 아오코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아!! 슈팅 스타!”

파트너 룸 냉장고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이 떠오르자 아오코는 황급히 뒤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가게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고 지금은 매니저가 진작에 가게 문을 닫아버렸을 게 뻔했다. 심지어 그 다음 날은 아오코가 쉬는 날이었다.

“하아아아...”

나 오늘따라 왜 이런 거지? 아오코는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돌아섰다. 다시 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는 길이었지만 새벽이 되니 사람 한 명도 보이지 않는 어스름한 길이 되어 있었다. 거기다 하늘은 언제 온건지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이런 음침한 느낌에 아오코는 흠칫했지만 서둘러 집으로 가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달리던 아오코는 마침내 자신의 집으로 바로 가로질러 갈 수 있는 공원에 다다랐다.

-달깍

그때 조용히 빛을 비추던 가로등 하나가 달깍 소리와 함께 꺼졌다. 갑자기 어두워지자 아오코는 놀라서 꺼져버린 가로등을 올려다보았다.

‘뭐야, 무섭게.’

아오코는 몸을 더욱 더 움츠려들었다. 그때 이번에는 또 다른 가로등이 꺼졌다. 갑작스러운 가로등 암전에 아오코는 발을 멈추어버리고 말았다. 깜박. 그때 아까 꺼졌던 가로등이 다시 켜졌다. 다른 가로등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달라진 것이 있었다.

“...?”

두 개의 가로등 사이로 누군가 서있었다.

 

07.

이 늦은 새벽에 왠 사람이 있는 걸까 싶어 아오코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가야 정상일 것이다. 하지만 아오코는 그러지 않았다. 이상하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켜진 가로등 불빛 아래로 눈처럼 새하얀 망토가 바람에 실려 날아가는 것을 본 아오코는 자신의 앞에 나타난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바로 괴도 키드였다. 아까 뉴스에서 본 모습 그대로 눈처럼 새하얀 정장을 차려입은 괴도 키드는 오른손을 들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그녀의 주변에 있던 가로등이 원래 빛보다 더 환하게 켜져 공원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아오코가 놀라서 환해진 가로등을 번갈아보면 괴도 키드는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본 채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녀와 그의 사이가 1m 정도 남아서야 그의 발이 멈추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두 사람의 눈은 단 몇 초의 시간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단 한 번도 상대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흘렀을까. 하얀 장갑을 낀 그의 오른손에서 파란 장미가 나타났다.

“!”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말없이 파란 장미를 아오코에게 내밀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 극장에서 장미를 내밀었던 그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아오코는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만나고 싶었던 마술사가 갑작스럽게 내 앞에 나타났다. 그를 다시 만난다면..다시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저기..”

“......”

“그러니까..괴도 키드 씨?”

아오코가 말을 걸며 다가오자 키드는 조금 놀랐는지 장미를 내밀던 오른팔을 조금 움츠러들었다. 아오코는 손을 흔들며 키드가 자신을 보고 있는지 확인했다. 챙 아래 그림자 때문에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아오코를 확실하게 보고 있었다.

“키드 씨는 기억하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주 전에 당신의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에요.”

“.....”

“전 말이죠. 나쁜 사람과 엮여서 비참하게 헤어진 이후로 제일 친한 친구 외에는 사람을 만나는 걸 피하게 되었어요.”

“....”

“피했다 라기 보단..두려워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오코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괴도 키드는 가만히 서서 아오코의 말을 묵묵히 들어줄 뿐이었다. 아오코는 심호흡을 하며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친구가 같이 가지고 해서 처음으로 공연을 보러갔어요. 그 공연이 바로...괴도 키드의 마술이었어요.”

“....”

“그곳에서 당신을 처음 보았죠. 있죠, 그때 당신이 처음으로 보여주었던 마술. 빗속에서 홀로 서있었던 당신을 보았던 그 순간 전 다시 그날의 일이 떠올라서 슬펐지만 그 빗속에서 마술을 보여주는 순간 그 슬픈 생각이 사라졌어요. 아 그 전에 당신이 중간에 저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뭐..그럴 리는 없을 테니..아무튼..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

“보았어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괴도 키드의 입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왔다. 갑작스런 괴도 키드의 대답에 아오코는 놀라서 입을 벌렸다. 목소리가 달랐다. 공연을 하면서 보여주었던 개구지고 장난기가 가득한 마술사의 목소리가 아닌 진솔하고 진정성이 느껴지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마술을 준비하려는 데 갑자기 슬픈 표정으로 날 보던 아가씨를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예?”

“그때 조금 놀라긴 했는데 제가 한 행동이 아가씨를 놀라게 한 게 아닐까 싶어 괜히 미안해서.”

“.....”

“조금 시나리오를 바꾸어 무대 위에서 변신하기로 했던 괴도 키드의 모습으로 당신의 앞에서 변신하여 나타났었습니다.”

가로등 아래로 괴도 키드의 호선이 비쳐졌다. 뜻밖의 사실을 안 아오코는 놀라서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그냥 기분 탓이라고만 여겼었는데 이 사람 나와 눈이 마주쳤었어. 심지어 그날의 나를 기억하고 있었어. 아오코는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것을 느꼈다.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뭔가 덜 풀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아가씨?”

“저...한 가지 물어봐도 될까요?”

“말해보세요.”

“제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오코의 질문에 여전히 장미를 들고 있던 괴도 키드의 손이 멈추었다. ‘이런.’ 괴도 키드는 작게 중얼거리며 난감하다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기 시작했다.

“키드 씨가 제게 보여준 가로등 마술을 어떻게 한 건진 모르지만 이것만은 알아요. 이 마술은 관람객이 없으면 무의미하다는 걸.”

“.....”

“그 관람객은 나 하나. 제가 여기로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죠.”

“.....”

“키드 씨와 나와의 접점은 2주 전의 공연뿐이에요. 그 이후로는 키드 씨는 나를 만난 적이 결코 없었을 텐데 어떻게...”

“..누가 알려주었거든요.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괴도 키드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순간 아오코의 눈이 더 크게 떠졌다. 말투는 다르지만 목소리의 톤은 똑같다는 것을 그녀는 눈치 챘다. 마침내 아오코는 풀리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거짓말.”

“네?”

“누가 알려준 게 아니잖아요.”

아오코는 성큼성큼 괴도 키드에게 다가갔다. 조금 당황했는지 그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그의 발보단 아오코의 발이 더 빨랐다. 아오코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괴도 키드의 모자를 잡았다.

“내가 말해주어서 온 거잖아.”

이 말을 끝내자마자 아오코는 얼른 잡고 있던 하얀 모자를 벗겼다. 모자를 벗기자 아오코는 가로등 빛 아래로 여전히 헝클어져 있는 곱슬 머리칼 아래로 모노클을 끼운 채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쿠로바 카이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카이토는 이건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는지 멋쩍게 웃으며 턱을 긁적인 채 말했다.

“하하..들켜버렸네요. 바니의 추리력에 놀라울 따름입니다. 탐정하셔도 되겠어요.”

“언젠가 한 번은 꼭 당신을 만나고 싶다고 말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죠. 단 한 사람에게만.”

“아아...그랬죠. 그게 나였으니까요.”

카이토는 그제야 어제의 일을 떠올리며 속으로 아차 싶어 뒷머리를 긁적였다. 생각보다 허무하게 정체를 들켜버리게 되었던 결정적 요인이 그 부분에 있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바로 다음날 거짓말처럼 당신이 내 앞에 나타났어. 이런 우연이 세상에 어디 있어.”

아오코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카이토는 가만히 하얀 모자를 두 손으로 꽉 쥔 채 입을 내밀며 오물조물 말하는 아오코의 모습이 왠지 모르게 사랑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와 이거 조금 위험한데.’

카이토는 애써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잠시 후 두 사람 사이에선 그 어떤 말도 오가지 않았다. 점점 갈수록 어색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자 카이토는 이제 어떻게 결말을 지어야 하나 하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떠오른 것이 있었는지 그는 능글맞은 목소리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 어때요?”

“예에?”

뜬금없는 카이토의 질문에 아오코는 당황해서 되물어버렸다. 이 어색한 기운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자기가 어떠냐니.

“어...저기 그러니까..”

아오코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카이토의 시선을 피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르고 온몸이 더워지는 기분에 아오코는 급히 들고 있던 괴도 키드의 모자로 부채질을 했다. 이상하다. 왜 이렇게 떨리는 거지? 저 사람 앞에서 떨릴 상황이 없잖아. 쿠로바 카이토가 괴도 키드라는 사실을 알아버려선가? 아니면....설마.

‘내가 그를 신경 쓰는 거라고?’

부정해야 한다. 부정해야...하나?

“어..저기..카이토 씨. 나는 아직..카이토 씨가..”

“괴도 키드일 때랑 쿠로바 카이토일 때랑 느낌이 어때 보여요, 나?”

“....네?”

횡설수설하며 아무 말이나 내뱉으려던 아오코의 입을 다물게 한 카이토의 질문은 아오코가 예상했던 분야랑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질문이었다. 그저 A일 때의 자신과 B일 때의 자신의 차이점을 묻는 순수한 질문.

“왜 그래요, 바니? 바니 혹시...”

“!”

“다른 의미로 생각했죠? 예를 들면 내가 남자로 어떻게 보이는..아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얀 모자가 카이토의 이마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갑작스런 기습에 잠시 당혹해하다 정신을 차려보면 아오코는 어느새 저 멀리 도망치듯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바니, 어디 가요! 카이토는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이미 그녀는 그의 시야에서 멀리 사라져버린 후였다.

“가, 갈 거면 이거라도 가지고 가지..”

카이토는 주인 잃은 파란 장미를 들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멍청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 아오코는 모를 것이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도 어느 샌가 그녀에게 간지럽고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어왔다는 것을.

 

- Kuroba Kaito Side

 

Un.

늘 다채롭고 아름다운 마술만을 하며 살아왔던 나로서는 점점 지루해지고 무의미해지는 일상이 나를 찾아오는 기분이 들었다. 똑같은 컨셉. 똑같은 마술. 똑같은 일상. 그런 하루에 점점 지루해지기 시작하자 나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보고자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인식들을 바꾸어보기로 했다.

그래서 보통 시작을 화려하게 꾸몄던 공연을 완전히 정반대로 어둡게 시작하여 반전을 시도했었다. 이 날을 위해 얼마나 피나는 연습을 해왔는가. 마침내 무대 위로 올라가 시작하려는데 웬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물도 조금 보인 것 같았는데 나도 모르게 하던 걸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울음을 멈춘 건지 갑자기 그녀가 고개를 들어 나를 마주보았다. 일렁이는 눈물을 품은 파란 눈동자가 너무도 아름다워서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말았다.

[카이토! 뭐해? 비상사태라도 일어났어?]

그때 귀에서 꽂혀 있는 이어폰에서 나를 도와주는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난 정신을 차리며 공연에 집중했다. 공연을 하는 내내 당신이 신경 쓰여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 때문에 운건가 싶어서 조금 미안한 감정이 든 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대 위가 아닌 당신의 앞에 나타나서 나는 공연의 서막을 알렸다.

 

Deux.

“어?”

우연을 믿지 않았었다. 그런데 공연이 끝나고 몇 시간 만에 그대를 다시 만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공연이 끝나고도 계속해서 당신에 대한 여운이 사라지지 않아서 회식도 마다하고 집으로 가는데 특이한 이름을 가진 칵테일 바가 눈에 들어와 한번 들어가 보았다. 그곳에서의 당신은 낮에 보았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로 당당하고 눈물이 아닌 원석을 품은 눈동자로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당신에게 다가갔다.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지만 남는 자리가 놀랍게도 당신이 있는 맞은편이라니. 정말 신기한 우연이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하루 속에 새로운 일상이 들어온 기분이었다. 그 신기한 우연을 만들어준 그대가 궁금해서 나는 끊임없이 당신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이 질문에 답 좀 해줘 라는 뉘앙스를 풍기도록 나는 당신을 귀찮게 했다. 조금 미안하긴 하지만 자꾸 그러고 싶었다. 안 그러면 네가 나를 안 봐줄 것 같아서. 그런 내가 귀찮을 법도 했건만 너는 조금도 나에게 짜증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너도 내가 신기했는지 내 모든 질문에 답해주었다. 그때부터 나는 점점 너에게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처음으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마술에 관심이 있느냐고. 질문을 받았을 뿐인데 나는 너무 기분이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아니, 단순히 기분이 좋아서가 아니라 간지럽고 두근거렸다. 그런데 너의 입에서 나온 것은 놀랍게도 괴도 키드. 나의 이야기였다. 너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일을 잊지 못했다고 했다. 그 이후로 너는 너의 모든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었다. 그동안의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그제야 왜 공연에서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흘렸는지 알게 되었다. 그런 너에게 공감이 되었고 너를 슬프게 해주었던 그놈에게서 분노의 감정이 끓어올랐다. 나는 그제야 이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너를 보듬어주고 싶었다. 그 슬픈 굴레 속에 갇혀 있는 너를 꺼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섣불리 너에게 다가갈 수 없었다. 명분이 없었다. 괴도 키드가 아닌 쿠로바 카이토는 엄연히 너에게 있어서 손님일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너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아니, 이성적으로 다가가려니 용기가 나질 않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나는 너에게 다가가기 전에 미친 짓을 해보기로 했다.

 

Trois.

예고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시오도메에 나타나 깜짝쇼를 했다. 갑작스레 소환된 도우미들에게 미안했지만 그들은 미운 표정을 지었지만 너답다며 묵묵히 나를 도와주었다. 민폐에 가까운 나의 갑작스러운 행보에 당황했던 사람들도 이내 가던 길을 멈추고 관람객들이 되어주었다. 언제 왔는지 방송국 카메라도 보였다. 그 카메라 너머로 너도 보기를 바라며 나는 그렇게 미친 짓을 완수했다.

한 번도 안 해본 것을 해보니 그보다 더한 것을 해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말을 하지 못했지만 나는 2주의 시간동안 형사 일을 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너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너의 이름이 뭔지, 어디서 사는지 까지. 그래서 네가 퇴근하는 길의 루트 중 마지막 코스인 공원의 가로등에 미리 손을 썼었다. 그리고 저 멀리서 다가오는 너에게 괴도 키드로써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놀랐어. 네가 나의 정체를 이런 식으로 알아버릴 줄은. 너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하느라 어제의 괴도 키드에 대한 대화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그러다 어색한 기운을 깨고자 나는 너에게 고백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너의 당황한 모습이 귀여웠다. 하지만 이내 다른 의미의 질문이라는 것을 명시해주어 어색한 분위기를 깰 수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유도하려다가 한 대 맞을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갑자기 안 해본 짓을 여러 번해서 그런가. 다음은 괴도 키드로서 여자에게 퇴짜를 맞아보는 거냐, 카이토?]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에서 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럴 리가 있냐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릴 줄은 몰랐는데. 여전히 내 손에 있는 장미는 주인을 잃은 듯 생기가 없어보였다. 나는 그것을 내 안주머니에 넣고 도우미들에게 이제 그만 철수하자고 말하려고 했다.

“저기요!”

“...!”

그때 뒤에서 들리는 너의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너를 찾았다. 거짓말처럼 멀리 도망갔던 네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왔다. 몇 걸음 뛰다가 멈춰버린 너를 보며 아쉬움의 탄성을 질렀지만 그 이후에 네가 한 말에 나는 희망을 찾게 되었다.

“다음에..다음에는 ‘플레일 노벨’에 오실 거죠?”

조금 발갛게 달아오른 뺨을 물들이며 내게 묻는 너의 모습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물론이라고.

 

Epilogue.

[이건 아무리 생각해봐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야.]

스피커로 해놓은 스마트폰 안에서 케이코가 놀라운 듯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한편 폰을 침대 위에 놓아두고 옆에서 발톱 깎는 데 집중하던 아오코는 큭큭 거리며 ‘네가 생각해봐도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하며 그녀의 말에 공감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실화란다.”

[세상에. 2주일 동안 매일매일 찾아와서 너의 손님이 되었던 사람이랑 썸타는 사이가 되었다니. 이거 완전 로맨스 소설이잖아? 좀 자세히 얘기해주라.]

여전히 믿지 못하겠는지 케이코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아오코는 나중에 얘기해준다며 그녀를 애태우게 만들곤 전화를 끊었다. ‘야, 아오코! 사람 궁금하게 만들어 놓고 어디 가!’ 스마트폰은 이 말을 남긴 채 그대로 화면을 꺼뜨렸다.

“미안해 케이코. 자세한 건 너에게도 말해 줄 수가 없어.”

특히나 공원에서 있었던 일은 더더욱.

*

“아직 나의 정체에 대해서 아무에게도 말 안했지?”

“안 했다니까. 나도 그 정도의 눈치는 있다고.”

그날 밤 쉐이커를 흔들며 다른 손님들의 칵테일을 만들고 있는 아오코의 맞은편 바 의자에 앉아 있던 카이토는 괴도 키드의 정체에 대해서 물었다. 곧이어 들려오는 그녀의 대답에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비록 그녀에게 얼굴을 들켰지만 세간에서의 괴도 키드는 얼굴 없는 마술사로 남아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정체를 밝힐 의사가 없었던 카이토로서는 비밀을 지켜주는 그녀가 고마울 뿐이었다.

“고마워.”

“뭐가?”

“그냥..다.”

“뭐야 그게.”

아오코는 김빠지는 소리를 내며 ‘가미카제’를 만들어 트레이 위에 올렸다. 그러자 눈치 빠른 헤시가 그것을 들고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에게 가져갔다.

“그래서 오늘은 무얼 추천해줄 거야? 아오코.”

“여기서는 바니라고 부르랬잖아.”

“그건 싫어.”

“...;;”

단호하게 대답하는 카이토에 아오코는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결심에 선 표정을 지으며 원기둥 모양의 긴 잔을 꺼내기 시작했다. 뭘 만드는 걸까 하고 궁금한 표정을 짓던 카이토는 그녀의 뒤에 창문 너머 밖에 세워져 있는 네모난 간판 안에 금빛 LED조명으로 예쁘게 적혀있는<Flail Novel>을 보았다.

‘플레일 노벨...응?’

문득 스쳐지나간 생각이 카이토의 머리를 탁 때리고 도망갔다. 카이토는 황급히 안주머니에서 메모지와 펜을 꺼내 무언갈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곧이어 무언갈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은 카이토는 빙긋 웃으며 펜을 돌리기 시작했다.

“뭐야 그 웃음은? 뭔가 알았다는 표정이네?”

손을 바삐 움직이던 아오코는 궁금하다는 듯 묻자 카이토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그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나 방금 재밌는 걸 알아냈어.”

“?”

“아니다, 재밌는 게 아니라 로맨틱한 걸 알아냈어.”

“뭔데 그래?”

아오코가 궁금하다는 듯이 묻자 카이토는 메모지를 들었다. 메모지에는

F. L. A. I. L. N. O. V. E. L.

이렇게 플레일 노벨의 영어철자가 한 자 씩 띄어서 쓰여 있었다.

“이걸 이렇게 하면...”

카이토가 펜을 끄적이며 설명해주자 아오코가 놀란 듯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러네?”

“그러니까. 마치 우리처럼?”

카이토가 능글맞은 목소리로 아오코와 눈을 마주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돌았다. 휴- 아오코는 결심했다는 듯 통에서 머들러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나도 이에 대한 대답을 해주어야 하나?”

아오코는 이렇게 말하며 머들러에 마침 자신이 완성한 칵테일 잔에 넣곤 그것을 카이토에게 내밀었다. 원기둥 모양의 잔 안에는 남색과 파란색의 그라데이션이 어우러지는 칵테일이 들어있었다.

“이거. 이름이 뭔지 알아?”

“글쎄? 이건 나도 처음 보는 술인 걸?”

신기하다는 듯 칵테일을 보는 카이토는 그 중에서 윗부분에 파란색을 띄는 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 파란빛이 너무도 예뻐서 정말 사파이어 보석을 녹였다고 말해도 믿을 것 같은 색이었다.

“블루 라이트...지만 나에게는.”

“?”

“그린 라이트.”

아오코가 붉어진 뺨을 드러내며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카이토는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의 환한 표정 아래로 메모지 위에 아까 카이토가 휘갈겨 쓴 새로운 문장이 적혀 있었다.

 

< FALL IN LO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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